이번에는 무슨 영화를 볼까 넷플릭스를 뒤져보다 한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국민엄마 김해숙 배우와 상큼발랄 신민아 배우의 조합이라니,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감정이 메말라 가는 줄 알았는데, 역시 엄마라는 치트키는 모든 자식들의 눈물샘인가 봅니다. 오랜만에 눈물 콧물 쏙 빼고 본 영화였네요. 하늘에서 내려온 엄마의 3일간의 휴가 이야기이지만, 보시는 분들도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연휴 비소식이 있던데 이 영화로 휴가 한 번 다녀오시는 건 어떠신가요?
개봉 2023.12.06.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드라마, 판타지
러닝타임 105분
배급 ㈜쇼박스
1. 영화 줄거리
시골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다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한 복자(김해숙). 죽은지 3년째 되는 날 그녀는 저승에서 3일간의 휴가를 받고 가이드(강기영)와 함께 이승으로 내려올 기회가 생깁니다. “따님은 어머님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요. 휴가 동안 좋은 기억만 담고 오시면 됩니다.”
미국에서 명문대 교수로 재직 중인 자랑스러운 외동딸 진주(신민아)를 만날 설렘도 잠시, 복자가 도착한 곳은 미국이 아닌 생전에 그녀가 살았던 시골 백반집이었는데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는 진주를 보고 당황한 복자. 설상가상으로 진주는 그곳에서 복자의 레시피로 백반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자신처럼 고생하고 살지 말라고 악착같이 돈 벌아 딸을 가르쳤던 복자는, 진주의 모습을 보며 억장이 무너집니다.
“왜 이러고 있냐? 빨리 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영혼인 복자의 목소리는 진주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날이 저물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가는 진주를 따라나간 복자는 괴로워하는 진주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실 진주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 공황장애를 앓고 잠도 잘 못 자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복자는 진주에게 괜찮으니 잘 살으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워 합니다. 그렇게 3일 동안 진주 옆에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자랐는지, 왜 지금 미국이 아닌 시골 백반집에 있는지 알게 된 복자. 예정된 휴가가 끝나고 가이드는 복자에게 저승으로 돌아가자고 재촉하지만, 그녀는 고통받는 딸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버티면서 가이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2. 내맘대로 관람 포인트
- 군침도는 음식들의 향연
한 평론가는 이 영화에 대해 '가끔 우울, 자주 군침'이라는 짧고 굵은 평가를 하기도 했습니다. 진주는 복자의 레시피를 계속해서 찾아가고자 하는데, 손맛 좋은 엄마를 닮았는지 모든 음식이 다 맛있어 보입니다. 영화 초반부터 장독대에서 맛있게 익은 김치를 꺼내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여낸 찌개로 시작하더니, 잔치국수로 면치기하는 어르신들, 직접 만든 뜨뜻한 두부와 김치, 막걸리 등등.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맛있는 음식들과 그 ASMR이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군침이 돌게 합니다. 시골 배경에 빛깔 좋은 음식들이라니, 한편으로는 영화 리틀포레스트도 생각나며 도시 속 생활을 벗어나 잔잔하게 힐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음식은 영화 속에서 복자와 진주를 이어주는 매개체이고, 인물들이 소통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며, 관객에게 모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주는 시골에 놀러온 단짝 미진이나 복자 친구인 춘분과 음식을 먹으며 속 깊은 대화를 합니다. 진주를 쫓아내려는 시골 주민들에게도 군말없이 잔치국수를 내어줍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진주가 복자의 레시피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 음식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며 화면이 자연스럽게 넘어가 모녀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러한 화면 전환과 시간 전환이 어색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 실제였으면 하는, 판타지적 요소
영화는 죽은 엄마의 영혼이 딸을 만나러 현실 세계에 온다는 판타지적 요소를 결합해 가장 본질적인 관계인 가족, 모녀간의 오해와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긴 했지만, 저승에서 이승으로 내려온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볼 수 있는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영혼인 복자가 진주와 진주의 친구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에게 툭툭 던지는 짤막한 대사들은 보통의 영혼들과 다르게(?) 소소한 웃음거리를 선사합니다. 모성애나 그리움애에만 치우쳐진 신파로 흘러가지 않아 관람하기에 편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는 엄마라는 치트키를 썼지만 모든 소중한 이들을 대입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 반려견 등등... 소중했던 이들이 영화처럼 이승에 잠시 내려와 힐링하고 갈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저도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나면서, 아빠도 저를 보러 내려왔으면, 나한텐 안 보이더라도 우리 아빠도 휴가를 보내러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3. 극히 주관적인 감상평
엄마들은 다 이자뿐다. 서운한거는 다 이자뿌고 좋은거만 기억한다.
복자의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저항없이 눈물을 쏟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단 진주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자식들에게 부모님들을 대신해서 해주는 말 같았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못해드리고, 돌아가신 후에야 후회하는 것은 모든 자식들의 루트인 것 같습니다. 잘해드린 것도 있을텐데 지나고 나면 꼭 못해드린 것만 생각나고,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에 비하면 세 발의 피이기도 하죠. 한 평생을 진주를 위해 희생하면서도 진주 때문에 행복해 했던 복자입니다.
기억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연료예요. 나쁜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복자는 힘들어하는 진주를 위해 본인이 평생을 바쳐 가장 사랑했던 딸에 대한 기억을 포기하기로 결심합니다. 줄거리에 스쳐지나가듯 적었던 영화 초반 가이드의 대사가 있었죠. “휴가 동안 좋은 기억만 담고 오시면 됩니다.” 진주에 대한 좋은 기억을 담기 위해 내려온 복자. 하지만 기억을 담기는 커녕, 결국 있던 기억까지 다 지워집니다. 복자는 진주에 대한 기억을 잃는 한편, 진주는 복자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게 되지요. 영혼인 복자는 더 이상 사람은 아니지만, 저승에서도 진주만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이승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가이드가 복자의 기억을 지우는 것을 태블릿 PC에서 복자와 진주의 과거 사진들이 순차적으로 까맣게 삭제되는 것으로 표현되지요. 기억이 지워지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들의 슬픔은 극대화 됩니다. 그 과정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과거 행복했던 기억들.... 영혼이 되어서도 딸을 위해 자신에게 남은 가장 소중한 연료를 희생하는 복자, 어머니의 사랑의 깊이는 정말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억지스러운 설정은 다소 있었지만, 모녀의 상황과 입장에 대한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일상에 대입해볼 수 있는 상황들이 많기 때문에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잔잔하면서도 큰 감동을 주는 영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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