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개봉한 영화 <1980>을 최근 봤습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5.18 민주화운동을 주요 소재로 다룬 영화입니다. 포스터를 보면 062-518-1980로 전화번호 같이 표현되어있으며, 지역번호 광주광역시와 5.18, 1980년을 담고 있습니다. 본래 화평반점이라는 가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실제 촬영은 광주가 아닌 전남 목포시에서 이루어졌다고 해요. 영화의 주무대가 되는 화평반점 역시 목포시에 실재한다고 합니다.
영화 <1980> / 강신일, 김규리, 백성현 주연
개봉 2024.03.27.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드라마
국가 대한민국
러닝타임 99분
배급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1. 영화 줄거리
이 영화는 철수와 영희네 가족, 그리고 그 동네, 그 지역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때는 12·12 군사반란 불과 5개월 후였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광주에는 때 아닌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평생 중국집에서 일하며 수타면을 뽑던 철수 할아버지는 1980년 5월 17일, 드디어 평생 꿈이었던 자신의 중식당 '화평반점'을 오픈합니다. 이 소식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축하해주며 말 그대로 화평하게 영화가 시작됩니다. 철수와 엄마, 아빠, 이모 그리고 2주 뒤면 새신랑이 될 삼촌과 예비 신부까지, 철수네 대가족은 이제 행복한 꿈만 꾸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이 광주로 내려와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며 그들의 평화는 산산조각이 납니다. 소위 '빨갱이'로 몰린 철수 아빠는 피투성이의 마지막 모습만 남긴 채 사라집니다. 틈만 나면 가게 문을 부시고 난동부리는 군인에게 반항했던 철수 삼촌도 빨갱이로 지목돼 심하게 구타를 받다 어디론가 끌려갑니다. 행복했던 철수네 가족은 한 순간에 절망과 눈물 바다가 되어 버립니다.
2. 내맘대로 관람 포인트
- 너무나 평범해서 가슴 아픈 이야기
너무나 평범했고, 소박하게 행복하고 화목하기만 바랐던 한 가정이 국가의 폭력 때문에 무너지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모두가 피해자였던 그 때 그 시절 광주의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하필 화평반점 식구들과 어린 시절부터 한 동네에서 같이 자라온 것 같은 영희 아빠가 군인이었고, 군인이어서 이웃마저 고문하고 또 군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습니다. 그렇다고 명령에 복종한다고 아무 생각과 저항 없이 행동한 군인마저 옹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연출이 엉망이고 전개가 산만하다는 평이 많습니다만, 그 시절 시민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까요?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군인들이 갑자기 사람들을 폭행하고, 총검으로 찌르고... 언론에서조차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아 폭발한 사람들이 방송사에 불을 질렀다는 내용도 스쳐 지나갑니다.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 권력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몰아붙이고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데 이용됩니다. 당연히 운동권 학생들에게도 그래서는 안 되지만, 이 영화는 그와 아무런 관련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들의 구역까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침범해서 아무렇지 않게 부시고 폭력을 일삼습니다. 거기에 반항하는 순간 그들은 '빨갱이'로 명명되어 무차별적인 폭력과 고문을 받게 되지요.
영화에서는 철수네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웃들은 철수 삼촌처럼 소리소문 없이 끌려가 안 보이는 사람이 많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무너진 가정이 수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아들을, 누군가는 남편을, 아내를, 또는 전부를 잃었습니다. 중식당이라는 흔한 음식점과, 아이들 이름을 각자 '철수'와 '영희'라 설정한 것도 의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교과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이름이었던 것처럼, 철수네와 영희네가 마주한 사건은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절 광주의 평범한 소시민 모두가 비극을 맞았다는 의미 아니었을까요?
3. 극히 주관적인 감상평
1980: The Unforgettable Day. 영화의 영어 제목처럼, 절대 잊을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안타까운 역사입니다.
저는 영화 목록에서 보이는 제목이 예전에 개봉한 영화 <1987>과 헛갈리면서,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 아닌가?' 하는 착각을 잠시 했습니다. 1987년은 6월 민주항쟁, 1980년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있던 해였습니다. 우리의 현대사는 참 암울한 사건이 많습니다. 그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고, 보는 순간은 너무나 화가 나고 답답하지만 우리에게 끊임없이 되새김질 해주는 이러한 영화는 언제든 환영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2021년 7월에 제작되었지만 코로나 시기와 맞물리며 제작비가 상당히 부족한 어려움을 겪다보니 거의 3년이 지난 상황에서 개봉할 수 있었는데요. 어쩌다 보니 지난해 말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서울의 봄>이 엄청난 흥행을 하며, 전두환이라는 사람에 대해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덕분에 소재나 개봉 시기는 참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광고 등의 비용도 부족했는지 많은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하고 4.3만명의 관객을 동반하며 갈무리된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영화에 대한 호평도 많지만 혹평도 그만큼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불편했던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 자체는 좋았지만, 억지스럽고 어색한 사투리가 자꾸 몰입을 방해했던 것 같습니다. 광주광역시인데 철수 할아버지는 왜 자꾸 북한말을 하며, 사투라도 평생 안 써 봤을 법한 서울 배우들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 차라리 오디션을 통해 사투리를 잘 쓰는 배우를 캐스팅 했다면 훨씬 자연스러운 소시민을 나타낼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가끔 개연성 측면에서 이해 안 가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사실 그러한 사건 자체가 이해할 수도, 이해해서도 안 되는 사건이기에 공권력의 폭력성과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관련도 없는 선량한 피해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남겨두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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